추억속의 비굴장면들...
호 선배의 '비굴장면'이라는 글을 읽고 오늘 아침에 혼자 실실 웃었다. 지나고나면 다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말그래도 '죽고싶다'거나 '숨고싶은' 그런 슬픈 사건들이었다. 호 선배 말대로 늙은거다...그러니 이런 기억들에 미소를 지을수 있지...

내 커리어 최악의 비굴 장면들...

#1. 내가 알아서 줄테니 이해하세요

일시: 90년대 후반 겨울 어떤날 (추었다)
장소: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연지동 사무실, 사장실 안
등장인물: 김경해 사장, 나

당시 나는 미국에서 돌아와서 아직 시차적응이 안되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그 다음날 롯데백화점에 가서 전재산을 주고 산 감청색 순모 양복을 입고 김경해 사장님과 마주 앉아 있었다.

김사장님: "아...언제 한국에 왔나?"

나: "몇일안됬습니다. 시차적응중입니다."

김사장님: "거기선 무슨 공부를 했나?"

나: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습니다...주절주절"

김사장님: "아...PRSA는 어떻게 알았나?"

나: "공부만으로는 안되는 부분을 PRSA 뉴욕챕터에 가입해 각종 세미나나 간행물들로 공부를 했습니다. 사장님께서 APR을 취득하셨길래 축하 이메일 드렸던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너무 기뻐서..."

김사장님: "아...그렇구나. 흠...언제부터 일할 수 있나?"

나: "네??? 저는 미국에서 부친 짐만 받아 풀면 바로 출근 할수 있습니다."

김사장님: "어디보자...그럼 다음주부터 나오세요. 큰 일한번 해봅시다."

나: "사장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사장님: "흠...그러고...월급은 이 쪽 업계가 그렇게 높지 못합니다. 내가 알아서 정해줄 테니 이해하세요. 열심히 하면 그 만큼 인정을 받을 껍니다."

나:" (쿠쿵!!!!!) ....................네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집에 왔다. 와이프가 묻는다. "년봉이 얼마래?" 내가 대답했다. "몰라 알아서 주신데..." "그래도 얼마정도인지 감도 없어?" "응...."
그로부터 한달 후 월급 명세서가 내 책상에 놓여졌다. 지금 생각하면 '하하~"할 금액인데 난 왜 그리 뿌듯했는지...

근데 솔직히 김사장님 앞에서 당시엔 한번 묻고 싶었다. "얼마주실라구요???"


#2. 저 대리입니다.

일시: 업무시작 후 이틀차
장소: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무실 한 구석
등장인물: 나

책상 전화가 울린다. 가만히 앉아서 앞으로 사수를 보좌해 섬길 클라이언트 GM 클리핑 북을 들쳐 보고 있었다. 다들 바빠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거나 눈길을 주질 않는다. 근데 전화가 온거다. 때르릉 때르릉 때르릉...

이거 어떻게 받아야 하나. 나에게 온 전화는 절대 아닐텐데. 보통 사무실에서는 어떻게 받더라...몇몇 주변 AE들의 전화들이 울리는 것들을 들었지만 참고할 것들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엔 클라이언트들이 거의 외국회사들이라 다른 AE들은 "Hello~" 또는 "This is OOOO. speaking~" 뭐 이딴 말들이 주였다.

한참 동안 끊어지지도 않는 전화를 바라보다가 용기를 냈다. '신입사원이면 다른 사람 전화라도 받아 주어야지!'

용기를 내서 전화를 받으면서 씩씩하게 소리쳤다. (갑자기 내가 왜 그랬을까?) "네. 정용민 대리입니다."(쿠쿵!!!!)

순간 주변 AE들이 킥킥킥킥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어떡하나...진짜 창피하다. 그 전화는 기억으로는 퇴사한 다른 AE를 찾는 전화였던 것 같다. "아...잠시만요" 옆자리에 있는 나이든 선배AE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OOO씨라는 분이 어디계시지요?"
"OOO씨요? 퇴사한지 한 일년됬는데? 없다 그래요" .....아 진짜. 이넘의 전화는 왜 1년만에 안찾던 사람을 찾는거야? 그리고 왜 하필이면 내 전화로. "퇴사하셨데는데요. 몰라요 어디로 가신지. 예 저는 입사한지 얼마안되서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일상인데 그때는 왜 그리 전화 벨 한번에 가슴이 떨리고 말이 꼬였을까?


#3. 에휴...다행이다

일시: 업무 시작 후 약 6개월 후(?)
장소: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무실
등장인물: 모신문 기자, 나

입사한지 얼마 안되는 신입대리였던 나에게 사수를 도와주면서 마이너 클라이언트로 홍콩의 모 IT회사를 맡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회사 프로파일과 각종 프레스킷등을 나 나름대로 정리했고, 사진들과 중요하다 싶은 자료들을 국문으로 손수 번역하면서 나름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날 영문 보도자료가 하나 홍콩에서 날라왔다. 팩스로. 번역을 해서 정성껏 윤문을했다. 그다음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미디어 리스트에 팩스를 넣고, 컨펌콜을 하고...하루종일 (진짜 당시에는 하루종일 뿌리고 전화한다) 매달렸다.

그 다음날...새벽 사무실에 혼자 나왔다. 아침배달판 신문들이 수북히 회사앞에 쌓여있다. 

결과....?????? 모 전자관련 신문에 기사 딱 하나. (쿠쿵!!!!!!)

 아무리 눈을 비벼도 기사가 없다. "어? 분명히 기자들이 다 받았다고 했는데..." 

선배 AE들이 하나둘 출근하고...멍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소리친다. "정대리님. 어제 보도자료 뿌린거 기사 빨리 모니터링해서 클리핑팀에게 넘겨주세요. 보고하는데 시간걸리니까. 일단 기사 카피해서 시놉뜨시고...빨리빨리"

"네...." 10분만에 뜬 시놉. 그리고 10분만에 쓱싹 클리핑되서 내 책상위에 놓여진 기사조각 하나. 이걸 어떻게 하나...흑흑흑

전화가 울린다. "네. 정용민입니다" "아...나 OO신문 OOO입니다. 내 기사봤어요?" "아...네. 감사합니다." "어...그거 잘 써준거야. 괜찮죠?" "아 그럼요. 네. 아주 고맙습니다. (진정이었다. 이때...)"

"그건 그렇고. 우리 술이나 한잔 합시다. 난 거기서 이 회사 홍보하는 줄 몰랐네. 이번 수요일 어때요? 거기 사무실이 어디죠?"

"(허걱)아...네...그러시져...우물쭈물...."

어떻게하나. 기자랑 술먹으면 돈은 어떻게 하지? 기사 써줬다고 비싼술 먹자하면 어쩌지..........? 이때 솔직히 회사가 무서워졌다. 다시 공부를 할까? 순간 생각....타조같이...코쿤현상이라고도 하던가...결국...그 기자에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술자리를 피했고 (그럴수밖에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 클라이언트에 관한 기사들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고 몇달 후 그 클라이언트는 계약 종료를 알려왔다. 한국 비지니스를 접는다고 했다. 에휴...다행인가...


쓰다보니 그 때 진땀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난다. 사실 추억이 아니였구나..아직도 씁쓸은 하구나. 아직 젊구나. 후후후.


by 우마미 | 2007/08/09 17:00 | 일상(日想)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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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lly at 2007/08/10 11:22
부장님도 전화 울리면 떨리고 그러셨어요? 왠지 안믿겨져요;;;;;
전 아직도 전화벨 울리면 두근두근해요.. 특히 부장님 전화오면..? =_ =;;
Commented by 우마미 at 2007/08/10 11:57
클라이언트하고 안친해서 그래...그건...일하기 싫거나..후후후
Commented by 김호 at 2007/08/10 21:05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모두들 경험하는 비굴장면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도자료 하나 들고 기자실 찾아가서, '비굴하게' 아첨하던 일:), 첫 출근하던 날 등등... 요즘 계속 그런 생각들을 종종 해보게 되네요. 즐거운 주말 되길. 우리 우. 마. 미. 님!
Commented by 우마미 at 2007/08/11 11:56
우리 우마미???............거 좀 느끼하네요.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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